[김홍도 불교를 그리다] 마음속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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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불교를 그리다] 마음속 관세음보살
  • 손태호
  • 승인 2022.05.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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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한 떨기 붉은 연꽃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달 같은 얼굴 길하고 상서로운 관세음,(月面吉祥觀世音)
어려움과 고통에서 구해주시는 큰 자비심이여.(救難救苦大慈心)
버들가지 감로수 인연 따라 뿌려 주시니(楊枝甘露隨緣灑)
이 정성 다하오니 강림해주소서.(盡爾精誠致降臨)
 _ 지운영 <백의관음상찬(白衣觀音像贊)>

굽이치는 파도로 바닷물은 부서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서 있으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관세음보살. 『화엄경』에서 법을 구하고자 선지식을 찾는 선재동자는 비슬지라 거사로부터 관세음보살이 계신 주처를 소개받는다. 먼 남쪽 바다로 나가면 아름다운 향, 풀과 금강보석이 깔린 보타낙가산이 있고 그곳에 관세음보살이 계신다고. 그리고 그곳에서 선재동자를 만난 관세음보살은 보살도를 실천하며 중생을 구호하는 대보살의 길을 이야기해주고 그의 명호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관세음보살은 『반야경』, 『관무량수경』, 『법화경』 등 수많은 경전에서 중생구제의 화현(化現)으로 등장해 어려움이 코앞에 닥친 중생들이 간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어려움과 공포를 해결해주는 대자비행(大慈悲行)의 보살이다. 이렇게 광대한 자비심을 가진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드넓은 바다에 나타나야 제격일 것이다. 김홍도의 <남해관음>은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단원의 불교회화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명작이다.

<남해관음>과 <백의관음>

화관을 쓴 관음보살님이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서 있다. 보발(寶髮, 머리카락)은 가지런히 빗은 정갈한 모습으로 길게 늘어졌고 아주 부드러운 필선으로 옷자락을 겹겹으로 풍성하게 표현했다. 이런 의복 표현은 마치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다는 행운유수묘(行雲流水描)라 불리는 바닷물 표현과 같아 바다와 관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돼 마치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한 생동감을 보여준다. 바다와 하늘은 둘 다 푸른빛이고 머리 뒤로는 ‘두광 같은 달’, ‘달 같은 두광’을 표현했는데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려 마치 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이다. 달이자 두광으로 보이는 이중적 표현은 김홍도의 재치 있는 감각이다. 관음보살은 몸을 살짝 돌린 채 얼굴만 좌측을 바라보며 세상 그 어떤 괴로움도 품어줄 것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런 자세와 미소는 기존 예배용 불화와는 다른 미감을 보여준다. 

<남해관음>, 견본담채, 20.6×30.6cm, 간송미술관 소장

관음보살 뒤에는 양류 가지가 꽂힌 정병을 들고 선재동자가 서 있다. 쌍계머리(양쪽으로 틀어 올린 머리)를 한 채 부끄러운 듯, 마치 엄마 뒤에 숨는 어린아이처럼 얼굴 한쪽을 가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또한 기존 수월관음도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이 선재동자 앞에서 세상 그 어떤 고난도 다 막아주겠다는 듯 서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위 낙관은 단원(檀園)이라 적고 사능(士能)이란 인장을 찍었다. 나머지 글씨는 후배 송월헌(松月軒) 임득명(林得明, 1767~?)이 쓴 글로 내용은 이렇다. 

쓸쓸히 홀로 벗어나 메인 데 없으니 
구름 자취 학 모습 더욱 짝할 수 없네  
이미 삼천리 안에 앉지도 않았고 
또한 삼천리 밖에 서지도 않았으니   
이는 천리마가 봄바람 살랑이는 광야에 있는 것 같고      
신령스러운 용이 밝은 달 비추는 
창해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송월헌 주인  

남쪽 비니원(석가여래의 탄생지 룸비니) 가운데 
연꽃 위에 탄생하시고 
천하에 무위도를 실행하시어 고해에 빠진 이들을 건져 내시며 
불난 집에서 불타는 이들을 구해 내셨으니
초연히 창해 만 리 밖에 우뚝 홀로 서 계시니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글 그대로구나    

임득명은 김홍도 한 세대 후 인물로 김홍도의 풍속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이자 중인출신 문인이다. 비록 불교에 밝지 못해 대승보살에 대해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존경하는 선배 화가의 불심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남해관음>, 지본담채, 25.4×22.1cm,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김홍도는 이 작품 외에도 선문대 박물관 소장 <남해관음>과 개인 소장 <백의관음>을 남겼다. 선문대 박물관 <남해관음> 역시 바다 위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데 구불거리는 의복과 넘실대는 바다, 달 같은 두광의 표현 등은 간송미술관본과 같다. 다른 점은 선재동자가 없는 관음보살 단독 상이고 특이하게도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점이다. 관음보살이 바구니를 들고 있는 예는 우리나라 불화에서 매우 드문데 경남 양산 신흥사 대광전 삼존관음보살벽화 중 어람관음(魚籃觀音)이 바구니를 들고 있어 김홍도가 어쩌면 어람관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백의관음>, 견본담채, 31.4×21.8cm, 개인 소장

개인 소장의 <백의관음>은 구름이 자욱한 허공을 엷은 먹빛으로 가볍게 선염했고 관음보살 표현은 김홍도의 다른 관음보살도와 같지만 목걸이(영락) 장식을 착용한 점이 특이하다. 백의관음보살은 양류 가지가 꽂힌 정병을 받쳐 든 선재동자와 함께 편안하게 서 있다. 마치 어려움이 처한 중생을 찾아보려는 듯 허공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백의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서른세 가지 모습 중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백의를 걸친 것이 특징이다. 자비로운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순조로운 출산과 갓난아기의 생명을 구하고 보살피는 데 유독 주의를 기울이는 보살이다. 

김홍도가 40대 연풍 현감 시절 녹봉을 털어 불공을 드린 공덕으로 어렵게 첫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산모의 무탈한 출산과 아기의 건강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작품은 김홍도가 아이들의 출산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보인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지단관월> 

관음보살에 대한 믿음이 깊었던 김홍도의 관음보살도 중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 한 점 더 있는데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단관월(指端觀月)>이란 작품이다.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른 어느 밤, 절벽 앞 바닷가 위 공중에서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흘러가는 구름 위로 등장한다. 파도는 넘실대고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 아마 보타낙가산의 수월관음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작품은 《중국고사도8폭병풍(中國故事圖八帖屛風)》 가운데 한 폭으로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옷을 매우 구불거리는 선으로 표현한 것은 다른 관음보살도와 동일하다. 이런 옷 선은 8곡병(曲屛, 병풍) 다른 인물들에게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김홍도표 불보살의 의복 표현으로 여겨도 될 듯하다. 

다른 관음보살도와 다른 점은 선재동자에게도 두광을 표현했다는 점이고 또 별도의 달을 그려놓은 것이다. 달을 별도로 그린 이유는 아마도 ‘지단관월’이란 제목과 연관이 있을 듯하다. ‘지단관월’은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라는 뜻으로 이는 『원각경(圓覺經)』 「청정혜보살」장에 나오는 구절로 ‘경전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을 매개로 가리키는 달을 보면 손가락은 궁극적으로 달이 아님을 알게 된다.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깨우치는 다양한 방편도 이처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다’라는 선불교의 내용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또 『능엄경』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가리켜 보이면, 손가락만 보고 달은 보지 못하니, 이와 같이 이름에 매달리는 자는, 나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라는 구절도 있다. ​

<지단관월>, 《중국고사도8폭병풍》, 견본담채, 48.5×98.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처럼 달은 그림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에 달을 별도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달의 크기보다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두광을 점차 작게 그려 리듬감 있게 배치했다. <지단관월>은 김홍도가 단순히 모양만 흉내를 내서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불교 경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작품이다.

이렇게 단원 김홍도는 조선시대 궁중 화가로는 이례적으로 4점이나 되는 감상용 관음보살도를 제작했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 관음보살에 대한 신심이 충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홍도의 관음보살 표현은 일반적인 불화보다는 여성적 모습이 강조돼 묘사됐는데 이는 김홍도가 관음보살의 대자대비한 성격을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그리고 자애로운 마음과 흡사하게 인식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김홍도의 ‘관음보살도’ 제작 경향은 조선 말기로도 이어져 근대 사진가이자 서화가인 지운영(1852~1935)의 <백의관음>이 등장한다. 

지운영, <백의관음>, 1918, 견본담색, 76.6×21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성스러운 관음보살이 바다 붉은 연꽃잎 위에서 고통과 병마를 씻어줄 감로수 그릇에 양류 가지를 담그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양류관음의 모습이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이 쓰고 있는 보관의 화불이 아미타불이 아닌 스님의 모습이고 천의와 군의의 구분이 없으며, 보발을 사람의 머리칼처럼 표현한 점은 불교 도상의 이해가 깊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담청색과 옅은 분홍색의 부드러운 색감, 인물이 화면 가득히 크게 묘사된 점, 후덕한 대인상,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인간과는 거리감 있는 성자의 모습보다는 우리 곁에 있는 듯한 친근한 이미지다. 

지운영은 말년에 불교에 귀의해 1912년 관악산에 백련암을 짓고 정성껏 관음기도를 올렸다는 기록과 상단 우측의 ‘백의관음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굳은 신심을 이렇게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여전히 창궐하는 시기, 병마와 생활고로 고통받는 많은 중생에게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심이 전해져 모두 괴로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길 기원한다.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참고문헌
오주석, 『단원 김홍도』, 열화당, 1998
진준현, 『단원 김홍도 연구』, 일지사, 1999
한국민족미술연구소, 『간송문화』 NO77 도석, 2009

 

손태호 
동국대 미술학 박사. (사)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이를 현대적 응용함으로써 대중과 함께하는 미술사 연구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조선 및 근대 한국회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저술과 강연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전문 ㈜인더스투어를 운영하며 국내외 불교유적답사 및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세우는 옛 그림』(2012),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2017), 『조선불상의 탄생』(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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