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삶을 놀이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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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삶을 놀이로 만드는가
  •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 승인 2024.07.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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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현실로 이뤄 주는 타고난 창조적 힘에 관하여

 

무엇이 삶을 놀이로 만드는가
저작·역자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저

권혜림 번역

정가 18,000원
출간일 2024-06-28 분야 인문
책정보

ISBN9791172610142

쪽수280쪽

크기

135 * 210 * 22 mm / 465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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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로

모든 순간이 자유로운 놀이가 될 때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매 순간 놀이하듯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법에 관하여

“가슴은 머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의 말이다. 이 말속에는 많은 사람이 삶과 예술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창조성에 관한 진리가 담겨 있다. 창조성은 이성적 사고나 수학적 계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비롯되는 ‘무언가’라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즉흥 바이올린 연주자인 스티븐 나흐마노비치는 이 ‘무언가’에 접근하고 그 힘을 일상으로 끌어내는 방식으로서 ‘놀이’를 강조한다.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순수하게 놀이에 몰입하고 놀이와 하나가 되는 아이들처럼, 자신의 삶과 일에 온전히 빠져들 때 평범한 삶에 창조적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껏 뛰어놀아라. 거침없이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우리 내면에 깃든 창조의 영감이 샘솟게 하라. 이 책은 노는 법을 잊은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나침반과 같다. 우리를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인지 탐구함으로써 순수한 놀이로 되돌아가는 법을 알려 준다. 그 순간이 찾아오면 마침내 창조의 신비가 베일을 벗을 것이다

저자소개 위로

지은이_ 스티븐 나흐마노비치(Stephen Nachmanovitch)

스티븐 나흐마노비치는 공연예술, 멀티미디어, 생태학, 철학의 교차점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가르치며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즉흥 바이올린 연주자다. 1971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75년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한 연구로 인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에 바이올린・비올라・전자 바이올린 등 현악기 즉흥 연주의 선구자로 활약했으며, 여러 음악원과 대학에서 전문가 클래스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라디오, 텔레비전, 음악 및 연극 페스티벌에도 다수 출연했다. 현재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 미디어 분야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미술, 음악, 문학, 컴퓨터 기술을 융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멀티미디어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창조성과 예술의 정신적 토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옮긴이_ 권혜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공부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 인문, 사회 등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사유하고 번역한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독일 병사와 함께한 여름》 《심리학을 말하다 4:섹스》 《내면 치유》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가 있다.

목차 위로

머리말_ 새 피리를 연주하는 법

창조성이라는 수수께끼

1부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든 순간이 자유로운 놀이가 될 때

나를 잊으면 우주가 된다

내면에 흐르는 초월적 에너지

뮤즈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놀이에는 이유가 없다

삼매, 사라지기의 기술

2부 창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법

영감이 찰나의 불꽃이 되지 않으려면

한계가 없다면 예술도 없다

실수의 힘

다차원적 세계로의 초대, 공동 작업

질서는 상상력의 날개다

3부 무엇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가

피할 수 없는 어린 시절 끝

악순환의 실체는 두려움이다

판단의 유령

내려놓을수록 자유로워진다

기꺼이 기다릴 줄 아는 태도

누구에게나 깨달음은 찾아온다

4부 우리는 무엇을 만드는가

유혹하는 사랑의 에너지, 에로스

내적 공명으로서의 예술의 질

창조는 삶을 위한 예술이다

창조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헌신

작가의 말

감사의 말

참고 도서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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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위로

일상이 자유로운 놀이가 될 때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예술이 된다

‘놀이가 창조의 원천이다.’ 창조의 내적 원천을 탐구하는 이 책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어째서 그럴까? 놀이에 푹 빠진 어린아이를 떠올려 보면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논다. 아이들의 놀이에는 목적이 없고, 주체와 대상이 따로 없으며, 어떠한 제약도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지금 하는 놀이에 몰입해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러한 놀이는 미리 정해진 규칙이나 설명서를 따르는 대신 무의식, 내면의 고유함과 충만함을 원재료로 삼는다는 점에서 본능에 충실한 행위이다.

주변의 아이들을 살펴보라.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장난감을 쌓는 방식을 관찰해 보라. 놀랍지 않은가? 그들이 하거나 만든 것 중에는 똑같은 게 없다! 심지어 한 아이가 똑같은 재료로 만든 것일지라도 매번 결과물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예술가와 성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 어른이 되면서 잃어 버린 창조성의 본질이다.

어쩌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놀이, 창조성의 흐름을 잃어 버린 것일까? 가정, 학교, 직장 및 사회생활의 수많은 제약이 원인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강박, 통념에 따라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으면 버림받으리란 걱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조급함,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압박감 등이 우리를 놀이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창조적인 사람은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놀고 무엇으로든 놀 수 있는 아이들처럼 늘 자유롭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것, 자신이 하는 일에 풍덩 뛰어들어 몰입한다. 이렇듯 일이 놀이가 되고 일과 내가 하나가 될 때, 일상은 매 순간 창조적 경험이 되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예술이 된다.

내 안의 뮤즈를 깨우는 법,

나를 잊으면 우주와 하나가 된다

많은 사람이 영감(靈感)을 창조성의 제일 조건으로 꼽는다. 신의 계시와 같은 번뜩임이 찾아올 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으며, 창조적인 사람은 이러한 영감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분명 영감은 창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며, 활력을 불어넣는 경험이자 일생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이다. 하지만 영감이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영감의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영감의 순간을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찰나의 불꽃을 매일의 일상으로 옮겨 올 때 비로소 우리는 삶에서 진정한 창조를 시작할 수 있다.

일상에 영감을 불어넣는 공식은 간단하다. 모든 기대와 선입견을 내려놓고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면 매 순간을 전에 없던 새로운 순간들로 경험하게 된다. 존재의 본질은 변화이다. 세상 그 무엇도 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다. 깨어 있는 태도로 바라보고 귀 기울이면 온 세상이 낯설게 다가온다. 일본의 선승 하쿠인 에카쿠는 ‘나를 잊으면 우주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라는 관념과 나를 둘러싼 집착을 벗어 던지고 맑고 투명한 상태가 되면 나와 세상, 나와 우주의 진리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선불교의 삼매(三昧) 수행은 이러한 내려놓음, 사라지기를 통해 나와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나를 열면 뮤즈가 말은 건넨다. 내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서 예술이 꽃핀다.

연습이라는 이름의 연금술

기술은 창조성을 구현하는 도구이다

음악, 운동, 글쓰기 등 한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감이 재료라면 연습을 통해 숙달된 기술은 창조성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그 자체로 창조적인 활동이다. 실제로 연습 과정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실험 속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대가들은 자주 ‘한 번만 더’에 매료된다. 연주자는 잠들기 전에 한 곡만 더 연주해 보려 하고, 운동선수는 한 바퀴만 더 달리고 싶어 하고, 도예가는 하나만 더 빚어 보려고 한다. 자기 일과 사랑에 빠진 그들에게 연습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스스로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일인 동시에 기쁨과 황홀경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때로는 숙달된 기술이 일종의 자기 검열 장치가 되어 창조성을 제한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 역시 연습에 달려 있다. 기술이 무의식화될 때까지 연습하면 어느 순간 기술은 자취를 감춘다. 그러면 훌륭한 연주자들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베토벤의 명곡을 연주하거나, 아이들이 딴짓을 하면서 요리조리 자전거를 몰아가듯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것이 연습이 만들어 내는 연금술이다. 13세기 일본의 선승 도겐은 “불도(佛道)를 공부함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깨달음에 대한 생각조차 사라지고 그저 행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몸과 마음을 잊고, 내가 누구이며 왜 이러고 있는지마저 잊은 채 행할 수 있을 때, 영감은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몸을 맡길 것

삶이 있는 한 창조는 계속된다

훌륭한 연주자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모든 창조 활동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탈리아 현악기 장인인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는 베네치아 부두에서 노로 사용하다 버려진 나무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 절망에 찬 상황 속에서 최고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올리비에 메시앙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20세기 음악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작곡했다. 실수, 실패, 한계, 제약 등 인생의 모든 어려움은 한편으로 최고의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피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창조성의 원천은 인간 내면에 흐르는 무한한 에너지이다. 이것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삶이 기쁨으로 가득하다면 그 기쁨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삶이 슬픔으로 가득하다면 그 슬픔이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창조성을 발휘하고 예술적 영감을 실현하는 방법은 성공이나 실패, 한계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지극한 도(道)란 어렵지 않으니 단지 분별하는 마음만 버리면 된다”라는 8세기 중국의 선승 승찬대사의 말처럼, 우리가 구름처럼 자유롭고 여유롭다면 우리 안에 있는 창조성이 자연스럽게, 유유히 흘러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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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위로

어떤 의미에서 모든 예술은 즉흥 연주다. 한 번에 완성되어 있는 그대로 온전히 연주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중에게 선보이기 전에 일정 기간 수정과 재구성을 거쳐 ‘다듬어진’ 즉흥 연주도 있다. 오선지에 곡을 쓰는 작곡가도 처음에는 즉흥적으로 작업한 다음 기법과 이론을 가미해 조금씩 곡을 다듬는다. - 20쪽

순간 번쩍하고 찾아오는 영감은 즐겁고 활력을 불어넣는 경험이자 일생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천이다. 한 줄의 시가 탄생하는 순간에는 놀라운 에너지, 일관성과 명료성, 벅찬 행복감과 기쁨이 함께 따라온다. 그 순간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진다. (…)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아름다움이나 기쁨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한순간 찾아왔다가 다음 순간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35쪽

어쩌면 깨어 있는 상태란 언제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사람도 매 순간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할 수는 있다. 점점 더 안정적으로 귀 기울여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숙달이란 순간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자 책임감이다. 직관과 영감을 따르는 삶은 수동적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삶이다. - 62쪽

예술적 창조성은 잘 훈련받고 숙련된 성인 예술가가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놀이 의식의 원천을 활용할 때 만개한다. 놀이 의식에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독특한 느낌과 흐름이 있다. 마치 ‘매 순간 멈추지 않고 빠르게 흘러가는 물 위에 공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 72쪽

예술이 나타나려면 ‘나’는 사라져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이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나무, 바위, 구름, 아름다운 사람, 아기의 배냇짓, 숲속 젖은 땅에 반사된 햇살, 문득 들려오는 기타 소리 등에 눈과 귀가 사로잡힌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리라. 그 순간 마음과 감각은 대상에 완전히 빠져든다. - 76쪽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라는 익숙한 문구는 몇 가지 미묘하고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연습을 공연이나 실전을 준비하는 특별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습과 실전을 분리하면 어느 쪽도 진짜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이 둘을 분리해 왔던 탓에 수많은 아이가 피아노나 바이올린 심지어 음악 자체를 질색하게 되는 길로 들어섰다. - 96쪽

연습은 창작 과정에 박차를 가한다. 우연히 또는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놀라운 영감이 점점 커지고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건 연습 덕분이다. 여기서 영감의 순간을 지속적인 활동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합이 이루어진다. 영감은 더 이상 신의 숨결로 타올랐다가 꺼져 버리는 찰나의 불꽃이 아니다. - 103쪽

내가 유용하다고 생각한 규칙 하나는 ‘규칙은 두 가지면 충분하다’라는 것이다. 화음에 관한 규칙이 있다면 리듬에 관한 규칙 하나만 더 있으면 된다. 분위기에 관한 규칙이 하나 있다면 침묵에 관한 규칙 하나만 더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 무의식에는 이미 무한한 구조의 레퍼토리가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건 약간의 외적 구조다. - 115쪽

실수의 힘은 창의력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각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때로는 스스로를 탓하고 채찍질했던 잘못이 최고의 결과를 낳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펠릭스 쿨파(felix culpa), 즉 ‘복된 죄’라고 말한다. 예술 작업에서 가장 골치 아프고 불안하고 좌절감을 안겨 주는 부분이 사실은 성장의 시작점일 수 있다. - 127쪽

뮤즈는 날 것 그대로의 영감, 번뜩임, 즉흥적으로 예술이 흘러나오는 순간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만들어 낸 것을 다듬고 맞추고 조정하면서 균형을 잡는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작업도 가능하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흩어진 날것의 영감을 정리하고 요리하고 소화한다. - 149쪽

완벽주의와 그의 쌍둥이 형제인 미루기는 늘 함께 다닌다. 우리는 모든 걸 해내야 하고, 모든 걸 가져야 하고, 모든 것이 되려고 한다. 이런 완벽주의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장애물보다 강력하다. 완벽주의는 우리를 판단의 유령과 대면하게 하는데, 결코 그 기대치에 맞출 수 없기에 우리는 미루기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 185쪽

악기, 연주나 연기, 찰나의 순간, 악기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느낌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보라. 몸과 마음을 잊고, 왜 내가 이러고 있는지 누가 여기에 있는지도 다 잊어 버려라. 이것이 기술의 본질이자 일을 예술로 만드는 본질이다. 자신을 비우면 영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무조건적인 내려놓기는 삶이나 예술이 내게 건네는 것이 내 손, 내 이해력, 내 능력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달았을 때 가능하다. - 196쪽

동서양의 여러 전통에서는 무위를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고 삶과 일의 흐름에 아주 약간, 슬며시 개입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강요하고 바로잡으려는 열망이 너무 크다. 또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는 지금 당장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이 무르익을 때까지 내버려둘 필요가 있음에도 선의라는 명목으로 간섭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 213쪽

어떤 의미에서 천재성은 연민과 맞닿아 있다. 둘 다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한 능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천재성과 연민은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의 몸과 마음을 보살피고자 하는 초월적인 태도, 고통을 받아들이는 철저함,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세심함을 의미한다. - 226쪽

자신의 본래 모습에 충실할수록 역설적으로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 널리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개성을 더 깊이 탐구하고 발전시키면 집단적 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자신의 목소리를 바꿀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바꿀 필요도 없다. - 240쪽

창조적 영감은 직업 예술가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창조력을 직업 예술가에게 넘겨 주는 건 내 안에 존재하는 치유 능력을 믿지 않고 전적으로 의사에게 의존하는 것과 다름없다. (…) 그러나 진정한 치유, 진정한 창조성은 스스로 이뤄 내야 한다. - 243쪽

창조의 공식은 간단하다. 오랫동안 짊어지고 다닌 무거운 여행 가방을 내려놓듯 자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치우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구름처럼 자유롭고 여유롭다면 우리 안에 있는 창조성은 자연스럽게, 단순하게 유유히 흘러나올 것이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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