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해석 다섯번째 : 일체는 모두라는 뜻이 아니다 [고광스님 어원으로 보는 불교 3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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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해석 다섯번째 : 일체는 모두라는 뜻이 아니다 [고광스님 어원으로 보는 불교 37강]
  • 불광미디어
  • 승인 2024.10.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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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반야심경에 대해 저번에 강의했던 것을 이어서 하는데요. 저번까지 구마라집 역하고 그다음에 현장스님 역을 그 제가 다시 번역한 것을 그 읽는 것까지 아마 끝냈던 거 같은데 오늘은 이제 반야와 이연이 함께 번역했고 그것을 제가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을 읽어보고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볼까 생각합니다 .

근데요 내용은 지금 사실 그 구마라집 번역이나 또는 그 현장스님 번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크게 다르지 않고 다만 구마라집 번역이 그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 한 번 더 언급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세 분이 거의 다 같습니다. 이 반야 이연 스님이 번역한 경전은 현장의 역과 그 뭐 아 거 똑같죠.

"사리자여 이러한 모든 것은 법이라 공한 모습이니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 공 가운데에는 색도 없고 느낌이나 생각, 행업, 의식도 없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으면 색깔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나아가 의식의 경계도 없을 것입니다. 무명도 없으면 또한 무명이 없어질 것도 없으며 나아가 늙고 죽음이 없으면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고집멸도 없으면 지혜가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는데 얻어질게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는게 이제 저의 번역입니다.

여기서 이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것은 제가 뭐 여러 번 말씀드리긴 했지만 여기서 이제 아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할 때 어 제(諸)라고 하는게 우리는 모든이라고 해서 마치 형용사처럼 해석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형용사처럼 해석하게 되면 이런 모든 법은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이런 모든 법은 공한 모양이라 뭐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제 여러 경전 특히 이제 아함경이나 이런 경전들 속에서 보면 제(諸)라고 하는게 그 일체(一切)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고요. 그다음에 일체(一切)라는 말은 그 싸뻬라고 썼을까 대한 생각을 여러 번 해 봤는데요. 저 개인적인 추측인데 아마 일체(一切)라는 말은 그 번역자가 일체라는 거 자체가 그 브라만이 나누어서 아트만 그 각각의 대상 속에 들어갔다는 의미에서 하나인데 잘라진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썼기 때문에 그것은 아마 브라만 그 당시에 전변설을 주장했던 브라만들이 생각했던 일체(一切)에 대한 개념을 그 표현했고 그 다음에 사문들이 주장했었다. 그 사대적인 사고방식 그런 식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서는 아마 제(諸)라고 번역하지 않았나는 생각이 좀 강력하게 의심이 드는데요. 사실 모두 제(諸)자도 보면 말씀 언 다음에 놈자 자를 갖다 붙여 놓은 거예요.

그래서 요거를 풀이해서 말하면 말로 표현된 것이라는 뜻을 가져요. 그래서그 연기에서도 보면 명색이 식이 대상으로 삼는 건 명색이든요 근데 명색이 것을 두 글자를 하나로 딱 합쳐 놓은 글자가 제와 같은 모양을 갔습니다 그래서 어 여기서는 이런 것들은 지금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법이라서 그래서 공한 모습으로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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