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수많은 현을 가진 피아노입니다. 미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주기 위해 하나하나의 건반을 두드리면서 연주하는 손입니다.”
-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 1911) 중에서
관세음보살은 고통과 어려움에서 중생을 구제해 주는 자비의 화신이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관(觀)’은 단순한 보고 듣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 보되 분별심 없이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世)’는 시간적 차원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공간적 차원에서는 상, 하, 사방의 시방(十方)을 아우른다. ‘음(音)’은 단순히 물리적 청각 자극인 ‘소리’만이 아닌, 중생들의 괴로움과 번뇌까지 포함하는 모든 진동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설하는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32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감각이 서로 통합돼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산속 깊은 암자에서 새벽 종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다. 그 울림 속에서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느끼며’, 은은한 향불 냄새를 ‘맡는다’. 이처럼 하나의 감각은 다른 모든 감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능엄경』에서는 이를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부른다. 25종 원통(圓通) 중에서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이 가장 뛰어나다고 보는데, 이는 청각이 가진 특별한 성질 때문이다. 시각은 앞만 볼 수 있고 촉각은 직접 접촉해야 하지만, 청각은 360도 전 방향의 소리를 동시에 알아차릴 수 있다. 더구나 청각은 잠을 잘 때도 깨어있어 끊임없이 작용한다. 이러한 청각의 원만한 성질은 깨달음의 본성과 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20세기 초, 서구 예술의 혁명적 전환점에서 이와 놀랍도록 유사한 예술적 통찰을 보여준 화가가 있다. 바로 바실리 칸딘스키다. 그는 색채를 보면서 동시에 소리를 들었고, 음악을 들으면서 색채를 보았다.
“예술가는 눈뿐만 아니라 영혼도 훈련해야 합니다.”
- 바실리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1866년 모스크바의 부유한 차상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특별한 감각의 소유자였다. 다섯 살 때 그린 그림에서부터 이미 색채에 대한 남다른 감수성을 보였고, 음악을 들으면 색채가 보이고 색채를 보면 소리가 들리는 공감각적 체험을 한다. 훗날 칸딘스키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듣고 음악 속에서 색채를 보는 충격적 경험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부터 화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법대 교수 자리까지 제안받았던 그는, 서른 살이 되던 1896년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모스크바의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본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이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당시 심정을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카탈로그를 보기 전까지 그것이 건초더미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무능함이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동시에 회화가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그는 안정된 법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뮌헨으로 떠난다. 1901년에는 전위적인 예술가 그룹 ‘팔랑크스’를 결성하여 활동하면서, 이곳에서 가브리엘레 뮌터를 만나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파리에 머물면서 야수파의 대담한 색채 사용에 큰 영향을 받았고, 1909년 ‘신 예술가협회’를 설립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추상 실험들은 당시 보수적인 미술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 이에 1911년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청기사’ 그룹을 결성해 더욱 과감한 예술적 실험을 이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소비에트 정권의 예술관이 보수화되면서 1921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 바우하우스의 교수로 부임한다. 바우하우스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 이론을 체계화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1933년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폐쇄하자 프랑스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더욱 자유로운 형태의 추상화를 실험했고, 1944년 12월 13일,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추상미술의 개척자로서 새로운 예술 언어를 찾아 헤맸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예술은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라는 신념을 지켰다.
“색채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청색은 가장 깊은 명상으로 이끄는 열쇠입니다.”
- 바실리 칸딘스키
푸른 망토를 입은 기사가 말을 타고 달린다. 휘날리는 망토 자락이 그 속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칸딘스키는 구상적인 면모를 유지한다. <청기사>(1903)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이지만, 이미 그의 후기 추상 작품을 예견하는 내면적 울림이 감지되는 걸작이다. 말을 탄 기사의 형상은 아직 구상적으로 표현돼 있으나, 배경의 풍경은 이미 현실과 초월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화면을 지배하는 푸른색의 다양한 변주인데, 눈 덮인 듯한 하얀 대지와 황금빛 하늘의 대비는 현실과 초월, 물질과 정신의 이원성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둘이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말과 기사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움직임은 단순한 물리적 운동이 아니라, 영적 고양을 위한 내면의 여정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의 힘찬 질주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은 마치 음악적 진동처럼 화면 전체에 울림을 준다. 안개 낀 듯한 배경의 처리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일상적 지각을 넘어선 깊은 영적 체험으로 이끈다.
“혼돈 속에 숨겨진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다.”
-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VII>(1913)은 칸딘스키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정점에 달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마치 대찰(大刹)의 법당 탱화처럼 장대하고 웅장한 이 작품은, 모든 감각이 하나로 통합되는 이근원통의 경지를 시각화한 듯하다.
거대한 캔버스(200×300cm) 위에 펼쳐진 이 작품은 언뜻 보면 혼돈의 소용돌이처럼 보인다. 큰 원과 작은 원들, 직선과 곡선들, 다양한 각도의 삼각형들이 화면 전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이는 마치 우주의 운행을 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검정원을 중심으로 왼쪽의 따뜻한 색조와 오른쪽의 차가운 색조가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관현악의 강약과 리듬처럼 느껴진다.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하나로 융합돼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처럼 무한히 펼쳐지는 우주의 질서가 드러난다. 화면 중앙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에너지는 사방으로 확산하며, 그 속에서 무수한 형태와 색채가 서로 감응하고 공명한다.
칸딘스키는 이 작품에서 색채의 영적 진동을 극대화한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대비, 빨간색과 초록색의 섬세한 균형, 보라색과 주황색의 미묘한 울림이 어우러져 마치 우주의 교향악을 듣는 듯한 감각을 전달한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형태들은 완전히 해체되거나 왜곡돼 있으면서도,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마치 선불교의 공안(公案)처럼, 논리적 사고로는 포착할 수 없는 역설적 진리를 암시한다.
<구성 VII>은 단순한 추상화가 아니라, 칸딘스키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내적 필연성’의 궁극적 실현이다. 이러한 면모는 <구성 VIII>(1923)에서도 이어진다.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가 하나의 교향곡처럼 구성돼 있다. 큰 원과 작은 원들, 직선과 곡선들, 다양한 각도의 삼각형들이 화면 전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이는 마치 우주의 운행을 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장엄한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검정원을 중심으로 왼쪽의 따뜻한 색조와 오른쪽의 차가운 색조가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관현악의 강약과 리듬처럼 느껴진다.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하나로 융합돼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가 원융하게 통하는’ 경지를 연상시킨다. 색채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다시 색채가 되는 순환적 지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점, 선, 면이라는 순수한 조형 요소들의 율동은 마치 우주의 근원적 진리를 향한 다라니와도 같다.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색채와 선의 효과만으로도 순수해지지 않을까? 실제 대상을 지니지는 않지만,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는 평생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영감을 주는 것은, 단순히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능엄경』에서 설하는 ‘이근원통’의 깨달음처럼, 칸딘스키는 하나의 감각을 통해 모든 감각을 꿰뚫어 보는 통찰에 도달했다. 관세음보살이 소리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듯이, 칸딘스키는 색채를 통해 영혼의 진동을 포착했다. 그에게 시각은 단순한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하나로 통합되는 원통(圓通)의 경지였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문득 색채와 형태라는 물질적 현상 너머에서 울리는 영혼의 진동을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관세음보살이 ‘반문문자성(反聞聞自性)’, 즉 소리를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듯이, 우리의 불성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순간이다. 칸딘스키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단순한 색채와 형태입니까, 아니면 영혼의 진동을 느끼고 있나요?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색채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모든 감각이 하나로 통하는 그 순간,
당신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요?”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